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화려한 간판이나 시설물이 아니라, 오래된 공장 벽면을 따라 늘어선 작품들입니다. 단순히 걸작만 모인 전시장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헤이리의 핵심적인 매력이에요. 방문하는 사람이 그 공간에 사는 셈이니, 보고 나면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마치 누군가의 거실에 초대받은 것 같은 친밀감이라고 할까요. 물론 작가 입장에서는 그게 또 부담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굉장히 독특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공간임은 분명합니다.
마을의 구성 자체가 체계적으로 짜여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갤러리, 카페, 공방, 체험 공간이 서로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서 한참을 걸어도 질리지 않아요. 길을 걷다 보면 우연히 발견하는 작은 조형물이나 벽화가 상당히 많아, 매번 다른 경로로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동선을 짜는 게 자유로운 편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루트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어차피 헤이리에서 길을 잃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솔직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인파를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평일 오전에 가시는 편이 정신적으로 이롭습니다. 날씨도 중요한데, 비 오면 비 맞은 채로 야외 작품을 봐야 하는 수고가 생깁니다. 그래서 날짜 고를 때는 일기예보 확인이 필수입니다. 그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하실 거예요. 그리고 대부분 갤러리는 휴관이 일정하지 않은 곳도 꽤 있어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미리 확인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 마을이 흥미로운 이유는 결국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데 있습니다. 예술이 따로 격리된 영역이 아니라 생활과 맞닿아 흐르고 있어요.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벽에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고,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잔에 직접 빚은 도자 작품이 놓여 있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곳이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꾸며진 느낌은 아닙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밀하게 배치된 인상이 강해서, 결국 헤이리라는 마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발품을 팔 만한 가치가 충분한 동네예요.